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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 지글러의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등록일 2013-08-12 10:25:03 작성자 이대순 / 공동대표
조회수 4467 연락처 02-722-3229 

요를레이히~조세피난처 이전에 '스위스'가 있었다!

[프레시안 books] 장 지글러의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이대순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09 오후 6:15:38

 

 
필자가 장 지글러라는 저자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4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딸이 논술학원 숙제를 한다면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원서는 2000년 출판되었으며 국내에는 2007년 번역되었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부터다. 제목이 약간 자극적(?)인 탓으로 호기심이 발동해 읽게 된 그 책은, 초등학교 5학년이 감당하기에는 약간 버겁지 않은가 하는 느낌은 주었지만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이라는 공인된 현장 활동가가 작성한 생생한 글이라는 점에서 의미와 호소력을 갖고 있었다.
 
▲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홍기빈 해제,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그리고 작년 겨울 필자의 의뢰인으로부터 <빼앗긴 대지의 꿈>(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08년 작품으로 국내에는 2010년 번역 출판되었다)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는데 그 저자 역시 장 지글러였다. 이전작이 '기아 문제'를 아빠의 입장에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서술한 글이었던데 반해, <빼앗긴 대지의 꿈>은 '기아 문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다룬 수작이었고 필자 역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필자는 장 지글러라는 저자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금번 '프레시안 books'에서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홍기빈 해제, 갈라파고스 펴냄)라는 책의 서평을 부탁받게 되었다.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는 제목만 놓고 보면 국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이 책은 국내에서 현재 39쇄까지 인쇄된 베스트셀러다)의 패러디나 시리즈물인 듯 보이지만, 사실 장 지글러가 1990년 출판한 초기작으로 전작과는 전혀 무관하다. 운율을 맞춘 듯한 제목은 최근 국제탐사언론협회(ICIJ)와 '뉴스타파'의 보도로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된 '조세피난처'와 '검은 돈'을 의식한 출판사의 작명 센스로 보인다.

국제금융자본의 탐욕을 파헤친 장 지글러

서평을 맡은 것을 계기로 필자는 장 지글러의 또 다른 저작 <탐욕의 시대>(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05년 작품으로 2008년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다)와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11년 작품으로 2012년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다)을 구해 읽어보았다.

처음에는 저자가 특정 개인의 문제 또는 특정 기업의 문제를 너무 쉽게 전체 문제로 비약하고 단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저자의 서술방식은, 많은 경우 탐사보도와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또 느낌표를 사용하여 다소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작품을 연이어 읽을수록 저자가 경험했거나 집요하게 추적해낸 팩트들이 의외로 방대하고 치밀하여 저자의 논리를 단단히 지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저서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탐사언론에 종사하는 저널리스트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 그는 사회학 교수다). 저자가 파헤쳐 놓은 사실들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저자의 분노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분노가 된다.

필자의 사무실은 2호선 선릉역 앞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역사 내에서 가끔 국제구호기금의 자원봉사자들이 '진흙과자'라는 것을 전시한다. 그때마다 필자는 제3세계의 어린이들이 실제 먹을 수는 없지만 과자를 갖는다는 만족감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장난감으로 '진흙과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저자의 글을 통해 '진흙과자'가 장난감이 아니라 아프리카 난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진흙에 약간의 단백질식물성분을 섞어 만든 것으로 그들의 주요 먹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충격이란….

장 지글러가 전세계 인구 중 5초마다 한 명씩 굶어 죽는 현실을 파고들면서 발견한 것은 제3세계 민중들 총생산의 10~20퍼센트를 원리금 명목으로 갈취해가는 국제금융자본의 탐욕(그들은 매년 제3세계에 자신들이 빌려주는 돈과 거의 같은 액수를 원리금으로 거둬들인다)과 다국적기업의 횡포였다.

1970년 칠레 최초로 민주적 선거과정을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아옌데가 불과 3년 만에 쿠데타 세력에 의해 살해된 것은 정말 그들의 국내 문제였을까? 칠레 어린이들에게 무상 급유를 하고자 했던 아옌데의 우유 판매 요청을 거절한 네슬레는 정말 무관할까? 1987년 부르키나파소의 식량 자급자족을 꿈꾸던 상카라 대통령을 살해한 진정한 범인은 누구일까?
 
▲ <탐욕의 시대>(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프레시안
저자는 여러 가지 사례들을 분석하고 끈기 있게 추적해가면서,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로 중세 봉건제를 끝장내고 쟁취했다고 믿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사실은 교묘하게 위장된,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비추어지는 허상일 뿐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세계의 굶주림이, 참을 수 없는 부조리함이 국제금융과두정과 다국적 봉건 제후들에게 원인이 있고 수많은 민중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를 통해 과거 중세 봉건제로 복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각에 따라서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선동적이고 과장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보수적 학자들 입장에서는 여러 기관들이 발표하는 공식적인 자료와 수치들이, 그러한 수식들로 치장되어 보이는 체제가 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수치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아니 의심해 본 적이 있는지 필자는 궁금하다. 진실을 가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진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방법과 검증이 불가능할 정도의 수많은 자료와 수치들을 쏟아놓고 '기관의 공신력'을 이용하여 민중을 기망하는 방법이다.

필자는 거의 20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며 거의 비슷한 기간 동안 시민운동을 해왔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건대 부조리, 특히 기업이나 권력이 관련된 부조리는 관련자가 유별나게 부패하거나 정신병적 경향이 있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병폐가 재수 없게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드러난 것이다. 부패 관리나 기업인들은 거의 모두 해당 기관이나 기업의 핵심들이고 핵심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 조직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유별나게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가 조직사회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버티며 그렇게 높은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가 파헤친 각종 사례들이 그 내용면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추잡하고 심각해도, 그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우리가 눈감고 있었던 우리 체제의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장 지글러의 저서를 볼 때마다 필자는 이러한 통찰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졌다. 장 지글러의 경력은 매우 화려하고 언뜻 보기에는 전형적인 주류인사이다. 스위스 제네바대학 사회학 교수이기도 했고 스위스의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의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주류인사가 왜 이렇게 급진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한 시각을 갖게 되었을까? 장 지글러와 비교할 만한 작가로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이면서 IMF, 세계은행, UNDP 등 국제기구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던 제프리 삭스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그의 저서 <빈곤의 종말>(김현구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을 보면, 제프리 삭스는 장 지글러만큼이나 풍부한 현장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볼리비아 등의 경제정책에도 깊이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프리 삭스의 시각은 장 지글러와는 차이가 있다. 저개발국가들도 경제성장의 사다리에 다리만 걸칠 수 있다면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는 선진제국이 도와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식의 인도주의적인 시각이다. 과연 그럴까?

근대국가 형성과 자본주의 성장에 대한 역사적 사실 중 우리가 흔히 빠지는 착시현상이 있는데, 국가권력과 기업권력을 전혀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고 두 권력이 서로 긴장관계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서구 세력은 앞선 군사력을 통해 식민지를 점령했을까.
 
▲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인도를 점령한 것은 대영제국이 아니라 동인도회사라는 민간회사였다. 동인도회사는 1600년 플라시 전투를 통해 프랑스 세력을 인도에서 몰아내고 인도무역을 독점하고 1765년 벵골지방의 조세징수권을 인도황제로부터 이양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인도통치를 시작했다. 비록 1858년 세포이반란을 계기로 동인도회사가 해체되면서 인도 통치권이 영국 여왕에게 직접 귀속되기는 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만 그랬다. 영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여왕에게 실질적으로는 권력이 없는 국가였다!

영국의 중국 침략 과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어느 국가가 아편 판매를 방해한다고 전쟁을 걸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영국이 인도와 중국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 해당국에 파견한 군 병력은 인도와 중국의 인구와 면적을 고려할 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소수였다). 제국주의 그리고 식민주의는 바로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장 지글러의 여러 저작들을 보면, 이러한 자본주의의 과거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진행 중이고 그 메커니즘 역시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장 지글러는 주류학자이면서 어떻게 이러한 뛰어난 통찰력을 갖게 되었는지 늘 궁금했다.

스위스를 병들게 한 검은 돈의 정체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는 저자가 1981년부터 스위스 연방의회 국회의원 활동을 거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을 심층 취재하는 형식으로 기술한 것이다(저자의 문제의식은 1976년 출판했던 <어떤 의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스위스(Une Suisse Au-dessus de Tout Soupçon)>라는 저서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이 책은 터키, 볼리비아 등의 마약거래의 대부들과 스위스의 주요 은행인 UBS, 크레디 스위스 등이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마약거래자금이 어떻게 스위스의 주요 은행을 통해 돈세탁이 되어 재투자가 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또 그러한 스위스의 주요 금융회사들이 법무부장관, 연방검찰, 수사판사 등 스위스의 고위 관리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아이티의 뒤발리에, 자이레의 모부투와 같은 독재자의 검은 돈들이 어떻게 스위스 은행 금고로 들어오는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설명하고 있다(마르코스는 자신의 검은 돈을 관리하기 위해 1978년부터 크레디 스위스의 고위 간부를 취리히 주재 필리핀 영사로 임명했다!).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에서 등장하는 UBS는 총자산기준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제 유수의 은행이다. 필자마저도 마약거래 자금이나 독재자의 자금이 UBS 매출 중 극히 일부분이 아닐까, 일부 조직의 부패 문제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UBS가 마약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독재자의 검은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들이는 정성(범죄행위방조로 인한 위험 부담)은 결코 일개 지점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그 거래규모 역시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는 규모였다. 장 지글러의 판단으로는 이 달콤한 마약이 스위스 전체를 병들게 하는 근원이었다(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인해 스위스 국내에 통화량이 증가하여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였고 이로 인해 정작 스위스 국민들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스위스가 레이건 정부의 협박에도 오랫동안 저항한 것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장 지글러가 그러한 탐색을 통해 대부분의 다른 학자와 달리 이론을 넘어서 자본주의의 실체와 마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몇 가지 부패 사건을 가지고 자본주의 전체를 규정하는 것은 분명 논리의 비약이고 위험하다. 그러나 결국은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을 토대로 주장을 내놓은 것이 가장 정직한 태도일 것이고 이러한 주장들이 모여서 결국은 각자는 볼 수 없는 전체의 모습을 보다 진실에 가깝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 특정 그룹에게 그와 같은 경험이 있었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러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가장 과학적인 증거이다.

장 지글러의 글은 실제 경험을, 실제 사건을 근거로 하기에 힘이 있다. 저자가 느낀 분노가 읽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에서 시작하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지나 <탐욕의 시대>, <빼앗긴 대지의 꿈>으로 이어져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이르면서 저자의 지식인으로서의 고뇌, 이제는 존재하는지조차 아득한 '지식인'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장 지글러의 말대로 굶주림은 우리의 수치이고 부끄러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매우 인상 깊게 남은 인물이 몇몇 있다. 엘리자베트 코프 법무부장관, 루돌프 게르버 연방검사(아마도 검찰총장쯤 되는 것 같다), 발터 괴테를리 '미스터 소송기각 판사'. 이들은 모두 그 조직의 최고위층 내지 그와 충복쯤 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한결같이 구역질나는, 과시하듯 내놓고 부패한 인물들이다, 이러한 인물들이 최고위층이 될 수 있는 환경은 어떤 것일까. 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 조직에서 성장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그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부패 성향을, 정신분열증적인 성향을 노출시키지 않고 감쪽같이 상사들이나 동료, 부하들을 속이고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이 가능할까.

이 글을 쓰는 순간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CJ그룹에서 자신의 충복을 통해 30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고, 그 사실로 인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됐다. 우리는 스위스와 다를까. 스위스는 국민 소득 면이나 사회구조의 안정성 등에서 한국보다 나은 사회로 흔히 인식되고 있다. 온갖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며 마약 대부들을 감싸는 스위스 정부와 우리가 얼마나 다를까.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문제는 2007년 그의 충복인 재무팀장 이 모 씨의 청부살인사건이 불거지면서 이미 그 전모가 드러난 사건이었다(오죽했으면 사법부가 판결문에서 탈세 규모까지 언급했을까). 그런데 여태까지 꽁꽁 감추고 있다가 6년여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당사자인 이재현을 구속기소하고, 탈세를 무마했다는 혐의로 당시 국세청장을 구속하겠다고 설치고 있다.

전두환 비자금 수사도 마찬가지다. 시공사든 허브빌리지든 출판 경험이나 건설 경험이 전혀 없는 전재국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출판사를 하고 리조트를 하는데, 검찰은 전재국이 신이 부여한 걸출한 능력을 타고 났고 로또라도 당첨되어 돈벼락을 맞아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뉴스타파'가 전재국의 조세피난처 비자금을 폭로하지 않았으면 수사할 생각이라도 했을까.
 
▲ <빼앗긴 대지의 꿈>(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영국에 조세정의네트워크이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이 단체의 발표를 인용하자면,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 다음으로 조세피난처에 많은 돈을 숨겨 놓은 국가이고 그 규모는 1970년부터 40년간 779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10위 안에 드는 무역 국가이고 무역의존도는 60퍼센트가 넘는다. 그래서 해외 금융거래가 많다. 7790억 달러의 주인은 누구일까. CJ그룹 이제현 회장의 비자금이 있다면 삼성그룹의 이건희는, 현대그룹의 정몽주는 비자금이 없을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비자금이니 촌지니 떡값이니 하는 용어는 법률적 용어도 아니고 그 의미조차 애매하다. 언론이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법률가 시각으로 볼 때 비자금은 공금횡령이고 촌지, 떡값은 뇌물이다. 언론은 왜 이런 애매모호한 표현을 할까. 방금 전 기사를 보니 '이건희 회장이 진노해서 삼성 엔지니어링 사장을 경질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진노', '격노'라는 전제군주에게나 쓸 표현이 이 시대에 왜 등장하는 걸까. 삼성그룹이 전체 상장사의 매출 이익 중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 가까이 된다는 기사와 위 기사가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의 착시일까. 몇 해 전부터 언론에서는 정부의 장관인사보다 삼성그룹의 사장단인사를 더욱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런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 중에 진실은 얼마나 될까.

80년대 스위스, 2013년 한국과 마찬가지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는 1990년 출판된 서적이다. 2013년 지금에 와서야 이 책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장 지글러의 저서들이 국내에서 워낙 반향을 일으키는 바람에 출판사가 그의 저서를 뒤지던 끝에 지금에 이르러 뒤늦게 출판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지글러가 분개했던 1980년대 스위스의 현실이 3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서 2013년의 대한민국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서도 우리사회에 온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은 분명 현재의 우리가 한 번 읽어보아야 할 만한 책이다.
 
 
 
 

 

/이대순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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