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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사학자 위르겐 코카의 시대 진단 - 역사학자 위르겐 코카의 시대 진단
등록일 2014-02-24 18:56:11 작성자 최재한 / 운영위원
조회수 1932 연락처 02-722-3229 




역사학자 위르겐 코카의 시대 진단
예측 불가능한 자본주의

 

 2014년 02월 18일 (화) 21:01:23 최재한  sdjournal.korea@gmail.com 
 
 
 
    


2008년 9월 15일 세계 4대 투자은행(IB)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613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700조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이 파산은 세계 최대 규모였다. 리먼 브라더스는 기업의 인수합병(M&A) 관련 수입과 채권 및 모기지(mortgage) 관련 투자가 많았고, 레버리지(Leverage, 차입비율)가 상당히 높았다. 따라서 경기변동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의 가능성이 매우 컸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촉발시켰고, 이를 기점으로 전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제의 침체라는 수렁에 빠졌다.

2001년 미국 부시대통령 취임 이후 발생한 9.11테러는 ‘닷컴버블’의 붕괴로 위축된 투자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해 말 엔론(Enron)의 회계부정사건을 시작으로 여러 기업들의 회계부정사실이 적발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 및 경기위축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됐다. 경제가 급격히 하락세로 돌아서려는 조짐을 보이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2001년 12월 1.75%, 2003년 6월 1%까지 기준금리를 낮췄다. 기준금리가 하락하자, 시장이자율도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기록적 저금리로 유동성이 증대되어, 모기지 신규 대출금이 무려 4조 달러에 육박하였다. 모기지란 은행에서 구입할 주택을 담보로 주택 구입자금(대략 주택시가의 70~80%)을 대출받고, 그 원리금을 장기(대략 30년) 상환하는 대출을 의미한다.

만일 주택구입자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은행은 담보로 잡은 주택을 압류함으로써 그 손실을 보전하게 된다. 금리가 사상 최저점을 기록하자, 일반 서민들도 투자목적으로 대출받는 경우도 많았고 기존 모기지를 낮은 금리의 모기지로 갈아타려는 수요도 급증했다. 게다가 정보통신을 활용한 온라인 자동대출시스템의 도입으로 대출이 쉽고 단순화되면서 모기지는 사상 유래 없는 증가세를 보였다. 모기지 시장의 경쟁과열은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 시장도 급성장시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이 상당히 미심쩍지만 열심히 벌면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낸 모기지다. 하지만 시장과열 속에 모기지 대출회사들은 충분한 심사를 거치지 않고 상환능력이 의심스런 사람들에게도 마구잡이식 ‘묻지 마!’ 대출을 해주었다.

2004년 하반기 30개월의 경기침체가 마무리됐다고 판단한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을 실행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모기지 이자율 역시 올랐고, 그 결과 모기지 연체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받은 사람 상당수가 변동이자율로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기지 연체율은 2008년 2분기까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이자율 상승에 의해 모기지 수요가 감소하면서 일차적으로 타격받은 곳이 모기지 대출회사였다.

그리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의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유럽금융시장에서도 거래 상대방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얼마나 연루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용경색이 심화됐고, 파산위험에 직면한 상당수 투자은행들은 초단기대출을 통해 위기상황을 넘겨야 했다. 한편,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자기자본비율(BIS)을 맞추기 위해 모기지 채권을 공매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모기지 채권가격의 하락을 부추겼고, 모기지 채권 발행이 어려워지자 주택시장이 급격히 냉각되었다. 부동산 가격과 모기지 채권가격이 하락하자, 은행의 자산가치도 하락하기 시작했고, 평가손실액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마침내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맞물려 미국 최대의 금융 보험 회사인 AIG도 지급불능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 주식시장도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AIG는 모기지 채권에 대한 보험 성격의 신용파산스왑(CDS)을 막대하게 발행했기 때문에, 파산 시 그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키 어려웠다. 결국 연준은 9월 16일 AIG에 대한 850억 달러 규모의 긴급자원지원을 결정했다. 사실 리먼 브라더스를 포함한 많은 금융기업들이 고위험고수익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을 선호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에 불어 닥친 주택가치 하락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은 대부분 부실 채권이 되어 관련 금융기업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뿌리는 미국경제가 기본적으로 부채 의존적이라는 사실이다. 실물경제 침체와 무관하게 금융자본이 레버리지를 통해 투기적 이윤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2007년 기준 미국 가계부채 13.8조 달러, 금융기업부채 16.0조 달러, 비금융기업부채 10.6조 달러, 정부부채 7.3조 달러로 총부채가 무려 47.7조 달러에 이르고, GDP 13.8조 달러의 무려 373%에 달하는 액수였다. 미국의 부채시계(www.usdebtclock.org)에 따르면, 이후 매일 40억 달러 이상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부채 증가는 미국 내 금융부문을 부양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금융부문의 수익이 크게 늘어났다. GDP와 무관하게 고공 행진을 거듭하던 금융기업들은 투기적 경영을 시작해 차입금 비율을 계속 증가시켜갔다. 금융위기가 시작될 무렵 미국의 대다수 금융기업들은 레버리지를 높여 자기자본의 약30배에 달하는 차입금을 투자에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미 정상적 투자가 아니라, 금융시장의 작은 환경변화에도 엄청난 피해를 보는 투기적 행태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투자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활용한 각종 파생금융상품들을 만들어 전 세계 금융기관에 팔아치웠다. 사실 금융시장은 신용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체납이 증가하면서, 관련 파생금융상품을 구매한 전 세계 금융기관은 마구잡이 매도를 시작했고, 결국 금융위기의 세계화가 철저하게 진행됐다. 독일 원로 사회사학자 위르겐 코카는 이러한 상황을 깊이 있게 성찰하여 의미 있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위르겐 코카(Jürgen Kocka, 1941년생)는 독일 빌레펠트대학을 거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2001-2007년 베를린학문연구센터(WZB) 대표를 지냈고, 독일 학계 가장 권위 있는 <라이프니츠상>과 <홀베르크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최근 <자본주의 역사 Geschichte des Kapitalismus>(C. H. Beck, 2013. 9.)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아래는 독일 FAZ와 가진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코카교수는 독일 역사학계에서 흔히 좌파 자유주의(linksliberal) 역사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인터뷰 내용은 필자의 입장이 아님을 밝혀둔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적 시각에서 시사점과 비판의 지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내용임에 틀림없다.

▲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자본주의는 위기인가? : 금융자본주의 측면에서 위기라는 표현은 유효하다. 반면 자본주의 전체는 위기 속에서 다시 그 생존력을 과시한 셈이다.

▲ 현재의 자본주의 비판은 지나친 측면이 있나? : 자본주의 비판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에 필요한 것이다. 그 비판이 자본주의가 가진 약점들을 고쳐 개선하도록 도왔다. 하지만 근본적이라 불리는 비판의 형태가 있다. 그러한 비판은 자본주의를 악마의 화신으로 이해한다.

▲ 새 책 『자본주의 역사』에서 자본주의의 성과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어떤 입장인가? : 오늘을 살고 있는 인구의 대다수가 전근대사회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면, 지난 200년의 진보에 깊은 감명을 받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다른 모든 경제시스템과 구별 짓는 것이 끊임없는 채근이나 혁신이다.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빈곤, 질병, 부자유, 그리고 온갖 종류의 고통에 대한 구제와 같은 자본주의 나름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중립적 개념인가? : 19세기 비판으로부터 자본주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20세기 초 자본주의 개념은 학문세계에 편입됐다. 그렇다고 그 비판적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치스 시기나 냉전시기, 심지어 오늘날까지 민족적인 자본주의 비판이 존재한다. 독일에서는 시장경제라는 용어가 더욱 선호되고, 영어권에서 자본주의 개념은 중립적으로 사용된다.

▲ 자본주의 비판은 좌파적 현상인가? :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비판은 좌파로부터 온 것이다. 그렇지만 보수적인 자본주의비판의 전통도 주목할 만하다. 보수적인 비판자들은 시장경제가 사회공동체를 파괴하고 전통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우려한다. 게다가 기독교적으로는 금융업을 통한 이윤추구와 막대한 부를 소유한 슈퍼리치에 대한 불신의 전통이 있다. 그리고 사적 이윤의 지배와 타인과의 저열한 경쟁 등의 자본주의 기본원칙은 보편적 윤리의식에 위배된다. 마지막으로 우편향의 민족적 자본주의 비판이 있는데, 그것은 종종 인종주의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에 대한 평가는? :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 정치적 애매모호함을 알아야한다. 덧붙여 자본주의에 대한 우월한 대안들도 아직까지는 눈에 띠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 틀 내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들이 만들어진다. 자본주의 개혁은 지속적 과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 사회는 자본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 사회 불평등은 전체적 번영에 대한 비용인가? : 오랜 세월 자본주의의 역동성이 충분히 커져서, 불평등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민중의 복지 또한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거기에 즉자적인 자동성(Automatismus)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환경자원의 파괴에 대해 생각해보면, 자본주의는 커다란 문제를 야기한다.

▲ 사회주의 국가에서 낮은 복지수준임에도, 자원훼손이 훨씬 더 커졌다 : 그렇다. 비자본주의 시스템도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비용을 경험했다. 전 세계가 지속가능한 경제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진정한 합의를 한다는 전제 하에,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조절이 가능하다. 정치적, 사회적 의지의 부재에서 나오는 결과를 가지고 사람들이 그 책임을 자본주의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고, 오히려 다양하게 규정된 의무조항 속에서 조절될 수 있는 것이다.

▲ 불평등 논의가 지나친가? : 아니다. 나는 불평등 논의가 급진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찬성한다. 우리가 그렇게 격렬하게 논의하고 있는 일국 내에서의 불평등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이 바로 대륙 간 불평등이다.

▲ 논의가 편협된 측면이 있는가? : 현재 유럽에서 노동자 문제는 19세기의 사회적 폭발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우리가 방글라데시 같은 남반구의 진정으로 불확실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십억 임금노동자를 생각해보면, 그곳 노동자 문제는 단숨에 폭발력을 회복할 것이다.

▲ 현재 개발도상국은 나아지고 있는가? :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번영의 열매가 유럽보다 훨씬 정의롭지 못하게 분배된다. 유럽의 경험은 분배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사회적 저항과 국가적 개입 없이는 성공하지 못한다. 어쨌든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도 국가와 시장은 함께 발전했다.

▲ 국가와 시장은 원래 대립이 없나? : 사람들이 적어도 국가와 시장을 원래 대립적이고 상반된 것으로 개념화해서는 안 된다. 봉건영주와 형성 중인 중앙국가의 이해관계가 초기 자본주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진작시켰다. 거꾸로 자본가들도 국가형성을 위한 재정을 지원했다. 사회적 국가(Sozialstaat)가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주된 문제는 확대된 세계자본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만한 세계적인 국가기구가 성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 자본주의와 국가부채는 상호 연관되어 있는가? : 자본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용제공과 채무다. 봉건영주와 도시국가들은 전쟁, 국가재건, 대표기관을 위한 재정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들 간 경쟁이 재정필요성 증가에 큰 역할을 했다. 유럽 지도상 세력판세의 변화는 왜 엄청난 자본주의의 역동성으로 귀결되었나를 잘 설명해준다. 국채에 대한 필요성이 있었고, 그것이 금융자본주의의 동인이었다.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 : 자본주의는 여러 문화적, 정치적 시스템에서 실현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원칙과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이에는 상호 제한성 속에 오랜 시간 엄청난 친화성이 형성됐다. 17세기와 18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인 동시에 가장 번성하고 자유로운 국가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 것임에 틀림없다.

▲ 위기는 순화되는가? : 자본주의 역동성은 멈추게 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조절을 통해 자본주의 역동성을 순화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 범주에서도 금융위기는 하나의 스캔들이었다. 자본주의의 강력한 역동성은 결정을 내린 사람이 잃느냐 얻느냐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에서 기인한다. 펀드매니저의 과도한 이윤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손실이 전가되어 실현된다. 그것은 정의롭지 못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이지도 않다.

▲ 위기는 얼마나 오래? : 이전 위기와의 차이는 국가의 막대한 구제자금투입이다. 이것은 금융위기를 국가부채위기로 바꿔놓았다. 또한 해결책 마련도 어렵게 해 놓았다. 금융시장 규제만으로는 위기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고, 유럽국가시스템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참에 시장과 국가가 과거의 역사적 단계에서처럼 훨씬 강력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글/최재한

사회민주주의정책연구회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출처 :   사민저널 www.sd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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