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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투기자본 ‘단물’만 빨아먹는다 (주간경향)
등록일 2014-12-10 10:35:35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330 연락처 02-722-3229 
투기자본 ‘단물’만 빨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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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인수당한 기업에서는 노동자 해고·지점 폐쇄·협력업체 경영 악화 반복

12월 4일 저녁 6시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 빨간 투쟁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난로를 쬐고 있었다. 옆에는 커다란 천막이 서 있다. 케이블방송 업체인 씨앤앰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150일 가까이 이들은 이 자리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파이낸스센터 옆에 있는 커다란 전광판 위에는 씨앤앰 노조 조합원 2명이 고용문제 해결을 외치며 고공농성 중이다.

씨앤앰 해고자 한형희씨는 “회사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해고된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11월 12일 씨앤앰 노동자 2명이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인근의 25m 높이의 전광판 위에 올라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1999년 입사한 한씨는 15년을 씨앤앰 직원으로 일했다. 씨앤앰 정규직으로 회사를 멀쩡히 다니던 한씨는 2008년부터 협력업체 직원이 됐다. 사모펀드가 대주주가 된 뒤의 일이다. 한씨는 “진짜 사장인 MBK파트너스와 대화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파이낸스센터에는 MBK파트너스가 입주해 있다.

MBK파트너스는 씨앤앰의 대주주인 국민유선방송투자(KCI)의 대주주다. KCI의 2대 주주는 맥쿼리코리아 오퍼튜니티다. 한씨는 “농성장에 씨앤앰 임원이 온 적도 있다. 그런데 이들과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권한도 없고 월급 사장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KCI는 2008년 3월까지 약 2조2000억원을 들여 씨앤앰 지분 90%를 인수했다. 씨앤앰 노동자들에 따르면, 씨앤앰은 경영이 어려운 회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씨앤앰은 KCI가 인수하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매년 수백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2013년에는 KCI가 대주주가 된 이후 최대 액수인 1009억원의 영업이익, 62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수백억 순이익 올린 회사도 비상경영
그럼에도 씨앤앰은 올해 들어 갑자기 비상경영 운운하며 자산 매각을 추진했다. 씨앤앰의 각 지사 건물이 매물로 나왔고, 이 과정에서 109명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받지 못하게 됐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씨앤앰 노동자들은 투기자본이 회사를 인수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씨앤앰은 2009년부터 거의 매년 당기순이익의 대부분을 배당했다. 대주주 KCI의 경영난 때문이다.

KCI는 씨앤앰 인수자금 중 1조5000억원가량을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았다. 매년 이자비용만 1000억원에 달한다. 아무리 씨앤앰에서 순이익의 100%에 가까운 돈을 배당받는다 한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 것이다.
해고자 한형희씨는 “사모펀드가 회사를 조용히 팔고 나갈 수 있게 놔두면 다른 회사에서 또 같은 행동을 할 것 아니냐”며 “투기자본의 악습을 끊기 위해서 우리가 길거리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2003년 문제가 된 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인수사건도 그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투기자본은 기업을 인수한 뒤 비교적 단기간에 차익만 챙기고 빠지는 자본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먹튀자본’이라고도 한다. 단기간에 차익을 챙기려다 보니 투기자본이 인수한 회사에서는 노동자 해고, 지점 폐쇄, 협력업체 경영 악화 등의 일이 반복되곤 한다.

여러 종류의 투기자본 중에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바로 사모투자전문회사(PEF·Private Equity Fund)다.

금융감독원이 2011년 발행한 사모투자전문회사 실무안내서에 따르면 한국계 사모펀드는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4년 12월에 도입됐다. 여기엔 배경이 있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이후 여러 외국 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을 인수해 큰 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외환위기 직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자본 유치를 천명했고, 본인 스스로 투기자본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를 만나 국내 투자를 부탁하기도 했다. 소로스는 1999년 서울증권을 인수한 뒤 자산 매각 등을 통해 900여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에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을 인수했고, 사모펀드 칼라일과 투자은행 JP모건은 한미은행을 인수했다.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을 인수한 이후 기업 대출은 줄이고 고금리 가계대출 상품 위주로 팔았다. 뉴브리지캐피탈도 1조원이 넘는 차익을 얻었다. 만도기계와 르노삼성도 외국 자본에 인수된 뒤 높은 배당성향을 보여 ‘먹튀자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조세 회피처에 본사, 자금 추적 피해
한국의 금융시장이 외국계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외국의 투기자본에 맞설 수 있는 토종 자본 육성 움직임이 시작됐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부 추진전략’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 분야를 특화 부문으로 선정했고, 2004년 10월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을 개정해 사모펀드 운용을 위한 법률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이후 몇 차례 개정을 통해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은 현재의 자본시장법으로 계승됐다. 이때부터 정부와 재계는 국내 사모펀드를 ‘외국 자본에 대항하는 토종 자본’으로 인식해 왔고, 이런 긍정적 시각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1월 7일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 앞에 모인 동양증권 피해자들이 유안타증권 대주주변경 승인처분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 9월 정부는 국회에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 이유에서 정부는 사모펀드에 대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자본”이라며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제고될 수 있도록 사모펀드의 규율체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사모펀드는 그렇게 창의적이지도, 혁신적이지도 않다. 국내 사모펀드가 돈 놓고 돈 먹는 자본의 놀이터 이상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히려 씨앤앰의 경우처럼 노동자들의 새우등만 터지는 일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10여년간 사모펀드가 ‘혁신적인 자본’의 면모를 보인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 자본 인수 후에는 배당률 높아져
투기자본의 자금출처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일부 해외 투기자본들은 한국과 조세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은 조세회피처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런 경우 투기자본이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차액을 남긴다 하더라도 과세하기가 어렵다.

동양증권의 대주주가 된 유안타증권도 조세회피, 투기자본 논란에 휩싸여 있다. 사기성 기업어음을 고객 4만여명에게 판매해 1조원 이상의 손해를 끼친 동양증권은 지난해 5월 타이완계로 알려진 유안타증권에 매각됐다. 동양증권 피해자들은 “동양증권이 유안타증권으로 간판만 바꿔 단 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동양증권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1심에서 현재현 회장 등의 사기 혐의가 인정됐지만 동양증권의 배상 비율은 20%대에 그치고 있다는 게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동양증권 피해자들은 유안타증권의 자금출처가 타이완이 아닌 조세회피처(버진 아일랜드, 케이먼 군도)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한국토지신탁 인수에 뛰어든 KKR 역시 케이먼 군도 등 조세회피처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가 자금출처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시민단체들은 KKR가 과거 오비맥주에서 거액의 차익과 배당금을 받고도 세금에 불복했다는 점을 들어 “먹튀 전력이 있는 투기자본에 금융기관을 팔아넘겨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MBK파트너스의 경우 한국계 펀드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6월 비즈니스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은 미국 시민권자라고 한다. 또한 윤종하 대표 스스로 펀드 출자금 중 75%가량이 해외 자금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10년 전 정부는 해외 자본에 대항하는 국내 자본을 말했지만 현실의 사모펀드는 국적과 무관하게 자본의 부정적인 모습만 노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법원에서 사모펀드의 무책임한 경영에 제동을 건 의미 있는 결정이 나왔다.

EFC(구 에스콰이어)의 협력업체들은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제도의 맹점 때문에 약 300억원의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상황이었다. 외담대는 일종의 3자 자금회전 방식으로, 본사가 협력업체로부터 물건을 받고 대신 외상매출채권을 발행한다. 그리고 협력업체는 채권을 담보로 잡히고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거나, 채권 지급일에 자금을 받는다. 문제는 EFC 본사가 은행에 결제대금을 내지 못하면서 그 돈을 협력업체가 대신 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사모펀드가 혁신적인 자본인가?
협력업체들은 EFC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H&Q가 사실상 EFC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며 법원에 H&Q가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받는 관리보수 91억여원에 대한 가압류를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다. EFC의 경영진이 사실상 매달 H&Q 임원들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그리고 11월 20일 법원은 협력업체 측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협력업체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태우 측은 “법원이 사모펀드의 경영행태에 대해 제동을 거는 건 매우 드문 일이며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도태우 변호사는 사모펀드가 회사 구성원 및 관계자들에게 좀 더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으로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도 변호사는 “EFC뿐만 아니라 모든 사모펀드가 중층 구조로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실권을 가진 H&Q의 펀드 운용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되어 있다. 실질적으로는 불법을 했지만 형식적으로는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게 되어 있는 현재 제도가 펀드 운용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 안에서는 씨앤앰 문제를 계기로 투기자본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형식 당안리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은 “한국 사모펀드 1호인 보고펀드의 파산으로 투기자본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시각도 있지만 투기자본의 투기적 형태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면서 “사모펀드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경영행태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더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역할론’ 주장하는 진보학자들

김상조 한성대 교수. | 김문석 기자

진보적 시민사회, 학계는 사모펀드를 비롯한 투기자본에 대해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이들은 론스타 등 해외 투기자본의 국부 유출, 투기자본이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대량해고 등의 문제를 지적해 왔다. 하지만 ‘진보’ 범주에 속하는 이들 중에서도 사모펀드의 긍정적인 측면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경제민주화론자인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다. 김 교수는 올해 3월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사모펀드(PEF)에 대한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위 칼럼에서 스스로 “PEF를 신자유주의의 첨병쯤으로 보는 진보진영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나의 이런 주장에 갸우뚱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썼다.

김 교수는 위 칼럼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경제개혁연대의 입장으로서나 사모펀드라는 수단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부실기업의 처리와 신생기업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사모펀드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기업 처리나 신생기업 성장에 대한 투자는 실패 가능성도 높다. 김 교수는 사모펀드가 위험부담이 큰 사업에 뛰어드는 ‘모험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주요 플레이어들은 은행이나 재벌 밑에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많다.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주도하는 (현재의) 사모펀드 시장은 (제대로 된) 사모펀드 시장이 아니다”라며 “사모펀드의 GP(펀드 운용자)로는 게릴라처럼 움직여서 위험을 감안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도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모펀드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반대해온 전 교수는 “재벌이 사모펀드를 이용해 부당한 상속을 하거나 대주주 적격성이 없는 부적절한 세력이 국내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부분은 문제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도 “사모펀드가 은행, 보험사 등 불특정 다수와 거래하는 금융기관을 인수하려 할 때는 훨씬 엄격한 잣대로 진행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교수는 자신이 사모펀드의 모든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모펀드가 하는 일은 ‘더티 잡’(더러운 일)이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기업을 잘라서 팔고, 지점을 폐쇄하고 사람을 자르는 일이다. 사모펀드가 아니면 기업회생촉진법에 의해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하는데 모피아가 주도하는 것보다는 낫다”

살리기 어려운 지경에 처한 기업이라면 사모펀드를 이용해서라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말이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 등 현실의 투기자본은 한계기업만 인수하는 건 아니다. 상하이차가 인수한 쌍용차의 경우 회계조작을 통해 기업 부실이 부풀려졌다는 점이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MBK파트너스와 맥쿼리가 인수한 씨앤앰은 인수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도 매년 흑자를 내고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의 인수 이후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비정규직 109명이 해고되기에 이르렀다.

 
전 교수는 “특정 사안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며 “구조조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철학의 차이가 있다. 이익이 나면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고 볼 수도 있고, 이익이 나는 상황에서도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의 인수 이후 발생하는 노동조건 악화에 대해서는 “만약 법질서를 어기고 벌어진 일이라면 부당노동행위나 이런 것으로 처벌받아야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김상조 교수에게도 사모펀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나는 자본시장법에 대한 개정 의견으로 사모펀드에 대한 생각을 말한 것이다. 노사관계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이 해결할 수 없다. 사모펀드의 여러 가지 악용 가능성에 눈을 감자는 말이 아니다. 노사관계 문제 등은 노동자 권익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다뤄야 할 문제이지, 사모펀드 규제가 강화된다고 해결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바로가기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201412091508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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