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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정’에서 재벌로 넘어간 절대권력
등록일 2013-06-05 14:11:22 작성자 이대순 / 공동대표
조회수 3698 연락처 02-722-3229 
여러 학자나 실무자들이 증언하듯이 이미 기업권력이 국가권력을 초월한 지 오래됐다. 오늘날 대기업들은 글로벌경제, 아니 신자유주의체제하에서 거대화, 초국적화를 통해 국가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졌다. 시장개방, 금융개방을 통해 기업은 언제든지 다른 나라로 옮길 수 있고 고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반면 국가는 이를 막을 만한 뾰족한 수가 없고 오히려 그들의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다.
 
요새 언론에 떠들썩한 CJ비자금을 한 번 살펴보자. 언론내용을 종합해 보면, CJ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한 방법은 그동안 다른 대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이 사용하였던 온갖 불법수단을 종합해 놓은 것 같다. 미술품이 면세대상인 점을 악용해 미술품거래를 이중계약으로 해서 차액을 빼돌리고, 본사가 해외 유령자회사에 보증을 서서 수천억 원을 대출받게 후 해외에서 투자실패라는 형식을 통해 돈을 빼돌린다. 또한 내부정보를 이용해서 주식거래를 하여 폭리를 취하고, 외국자본이 투자하는 것처럼 위장해서 주가를 조작하는 등 상상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검찰수사결과 앞으로 어디까지 밝혀질지 모르지만 그 비자금의 규모는 이미 수천억 원대를 넘어서 수조 원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검찰이 수사해서 재벌회장 한 명 아니 그 일당들 모두를 감옥에 집어넣으면 끝나는 것일까.
 
그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의식, 아니 문제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40대 이상은 군부독재시절, 즉 유신체제,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흔히 ‘공포정치’라고 하는데 그 시절 ‘공포’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영장도 없이 가족도 모르게 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시절 그렇게 고문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당시 인구의 1%는 넘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포의 칼끝에 중앙정보부가, 안기부가 있었고 그들의 ‘초법적’인 권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현재 기업권력은 과거 군부독재세력이 가지고 있었던 것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행사방법이 보다 세련되어 일반인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조금만 세심히 주변을 둘러보면 그들이 광범위하게 사회전체를 지배하고 있고, 그들의 권력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까지 침투해서 모든 것을 옥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비자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첫째, 외부인이 비자금의 존재를 알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번 CJ비자금 건도 따지고 보면 2008년 재무팀장 이씨의 청부살인혐의가 없었으면 묻혔을 것이다. 둘째, 현재 주요 그룹의 비자금 규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CJ그룹의 자금조성방법을 보면 해외거래가 많은 경우에 페이퍼 컴퍼니와 조세도피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쉬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런 방식의 비자금 조성이 CJ그룹에 국한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해외거래가 많은 대기업들 역시 상당한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참고로 연간 해외무역액 중 기업내부거래액은 거의 40%에 육박한다.
 
이러한 비자금은 실질적으로 회사돈이면서 그룹회장이 자기 돈으로 또 자기 권력으로 사용되지만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보이지 않는, 임기도 없는 종신의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인 것이다. 그룹회장은 비자금이 아니라도 이 시대의 최고권력자다. 그런데 비자금이라는 스텔스폭격기까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 중에 드러난 것이 얼마나 될까. 재무팀장 이모씨의 청부살인혐의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재현 회장은 청부살인혐의와 전혀 무관할까.

몇 해 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자식이 두들겨 맞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서 조폭 영화같은 복수극을 펼쳤다. SK그룹 2세인 최철원 전M&M 대표는 50대 운전사를 1대에 백만 원씩 주겠다고 하면서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운전사가 살려달라고 하니 삼백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하며 다시 때렸다. TV화면에 비춰지는 그룹회장의 모습은 늘 진지하고 단정하다. 직원들에게 그룹회장은 전지전능한 무오류의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조폭을 동원하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이 모습이 바로 그들의 생얼굴이 아닐까. 혹시 우리들은 그들의 조작된 이미지에 끊임없이 세뇌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두렵다. 비자금이야말로 이 시대의 ‘중앙정보부’가 아닌지. 


* 미디어 오늘 2013년 5월 29일자 기고문
* 바로가기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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